감사함을 느끼는 건 긍정적 마인드의 궁극이기 때문이다.
감사함을 느낄 때 사람의 몸에는 수많은 화학작용이 일어난다.

감사함에 충만한 사람은 그 넘치는 긍정적 에너지를 양분으로 긍정적인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는게 쉬워진다

긍정적으로 미래를 상상하면 모든 뇌 구조가 비슷한 감정들을 조직한다

감사함을 느끼는 건 하드웨어인 뇌를 바꾸고 뇌가 바뀌면 그 생각들인 소프트웨어도 변한다

궁극적으로 내가 변한다. 결국 감사함이란 내가 변하기 위해 할수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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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이 왜 중요한가?

생각에는 두 가지 시스템이 존재한다. 첫번째는 이성적인 사고 두번째는 직관적인 사고

이성적 사고란,
뇌에서 에너지를 소모하며 논리적인 검증을 거쳐 느리게 판단하는 것이다.

직관적 사고란,
뇌에서 최소한의 에너지만 소모하여 본능적인 판단으로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다.

처음 운전대를 잡는 초보운전자의 경우에는 이성적 사고만이 가득하다. 내가 언제 브레이크를 밟아야하는지 언제 엑셀을 밟아야하는지, 앞차와의 간격 신호등의 신호, 도로위의 교통상황과 사이드미러와 백미러 상황등 모든 상황을 하나하나 논리회로에 따라 느리게 판단하기 때문에 반응속도가 참으로 느리다. 왜 초보운전은 느리면서도 위험할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기도 하다.

이 초보적인 운전과정을 거치고 나면 모든것이 직관적인 사고로 바뀌게 된다. 신호다 초록색으로 바뀌었을 때 내가 왼쪽 패들을 밟아야하는 지 오른쪽 패들을 밟아야하는 지 전혀 논리적인 사고를 따르지 않는다. 그것은 굉장히 순간적이고 직관적이다. 백미러 사이드 미러의 경우에도 흘긋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차선을 옮겨도 되는지 안되는지에 대한 판단이 빠르게 떠오른다.

즉 생각이란, 이성적 사고로 부터 시작되어 루틴이 반복되면 직관적 사고로 바뀌게 된다.

경험많은 회사 직장선배들 혹은 임원들이 내용을 속속들이 알지 않고 판단하여도 신입사원보다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경험에서의 루틴으로 인하여 직관적인 사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직관적 사고가 왜 중요한것인가,

인간은 하루에 유한한 에너지를 갖는다. 뇌가 활동하는 것만으로도 칼로리를 소모한다. 인간이 하루에 주어진 에너지를 다 소모하게 된다면 아무리 깨어있을 지라도 집중을 하기 어렵고 정신이 산만하고 피로감을 느낀다

우리가 굉장히 집중을해야하는 업무나 정신적 스트레스가 높은 강도의 일을하고나면 번아웃이 오고 그 후 다른 활동에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다소 경험적인 부분으로 유츄할 수 있다.

직관적인 사고를 한다는 것은, 몇시에 일어날지 언제 의자에 앉을지 누구를 만나면 인사를 손만 흔들지 입으로 소리낼지 고개를 숙일지 고래를 숙인다면 얼마나 숙여야할지 같은 사소하고 방대한 판단 하나하나에 에너지를 얼마나 소모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직관적 사고는 너무 빠른 시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가끔은 틀린방향으로 결정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직관적 판단이라도 그 '감'이 좋은 사람일 수록 더 높은 효율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감'이 좋은 직관적 사고력을 갖춘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앞서갈 확률이 매우 높다. 그것이 직관적 사고가 중요한 이유다.

덧붙여 말하자면, 항상 직관적사고만 고집하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논리적으로 깊은 사고가 필요할 때 반드시 이성적 사고가 필요하다. 항상 그렇듯 밸런스가 필요한 것이다. 이성적 사고만이 존재하는 사람은 굉장히 부분적으로 장점을 가진 사람이 되고 직관적 사고만이 존재하는 사람은 판단에 대한 깊이있는 근거가 없고 날이 갈 수록 틀린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직관적인 사고가 중요한 것일까?

닭과 달걀, 의식과 무의식

여기서부터는 이성적-직관적이라는 비교가 의식-무의식으로 대체될 것이다. 이성적인것은 의식에 가깝다. 의식이라는 것은 우리가 자각하여 판단하는 것으로 한다. 직관이라는 무의식은 의식이 아닌 부분이라고 한다.

의식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무의식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의식은 무의식에서 모든방향으로 불규칙하고, 방대하고, 끊임없이 나오는 생각들에서 뇌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제거되고 좁혀지게 되면서 하나로 통일되는 사념이다. 무의식에서 방출되는 다양한 생각들중에 어떤 생각이 살아남고 어떤 생각이 제거되는지에 대한 프로세스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 프로세스를 증명하는것이 지금 목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무의식에서 나온것들이 정리되어 의식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식에서 나온 판단과 상황이 다시 피드백 되어 무의식에 가라앉는다. 그 무의식에 가라앉은 생각들은 또 방출되는 생각에 영향을 주게되는 식으로 영원히 의식과 무의식은 교류를 하게 된다.

의식은 무의식에 영향을 주고 무의식은 다시 의식에 영향을 준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의식에 집중한다. 무의식 기저에 깔린 수많은 사념들이 있음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간단히 크기로 설명하자면 의식은 아파트 한 채이고 무의식은 도시 하나다. 의식이 무의식에 영향을 주는것은 아파트 한채만큼이고 무의식이 의식에 영향을 주는것은 도시만큼이다.

여기서 시간의 변수를 생각해본다.

의식이라는 아파트가 한 채 한 채 쌓이면 언젠가 도시가 된다. 마치 우리 삶처럼... 하나하나의 경험이 결국 나라는 사람의 인생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나'라는 인생을 변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첫 번째 방법은 변환된 새로운 아파트를 하나하나 지어나가면서 전체적인 도시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다. 즉 하나하나의 경험마다 바뀐 나를 주입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관성의 법칙이 따른다.
게임중독에서 벗어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게임중독은 도파민에 의해 끊임없이 뇌의 만족에 대한 갈망에 저항해야한다. 행동 하나하나에 저항하는 것이다. 첫째날 굳은 의지를 다지며 게임을 하고싶은 욕망과 끊고자 하는 욕망과 부딪친다. 그리고 이겨낸다. 첫번쨰 저항은 쉽고 두번째 저항은 그럭저럭 버틴다 하더라도 도파민이 끊임없이 공격해온다면, 언젠가 내가 신체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약해졌을 때, 결국 다시 게임을 켜게 될 것이다.(사람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갈상태에 이르면 상대적으로 유혹에 쉽게 빠진다고 한다.)

두 번째 방법은 도시를 조금씩 조금씩 변화시키는 것이다. 도시를 한바뀌 둘러보며 처음에는 모든 아파트 입구에 씨앗을 흩뿌리면서 지나간다. 다음날에는 도시의 모든 아파트에 조금씩 물을 뿌리며 지나간다. 그 다음날에는 물을 한번 더 뿌린다. 그리고 햇볕을 쬐어주고 그런식으로 도시의 모든 아파트에는 작은 꽃밭이 생기게 된다.
게임중독에서 벗어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도파민에 관련된 서적을 접하며 도파민이 어떤 상황에서 나오고 어떻게해야 조절가능한지 학습한다. 그리고 중독센터에 등록하여 필요하다면 상담이나 약물복용까지 고려하여 도파민을 효과적으로 억제한다. 이 과정에서 게임을 하고자하는 욕망에 하나하나 부딪치며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게임에 대한 나의 욕망을 개선하는 것이다. 도파민에 대한 갈망을 다른 취미나 활동이 채우게끔 만드는 것이다. 결국 도파민 갈증을 다른 것으로 해소하여 게임중독에서 벗어난다.

정리하면, 의식은 작은 것 하나하나를 저항하여 부딪치며 끊임없이 싸우는 것이고, 무의식은 거대한 무언가를 전체적으로 변화시키는 움직임을 보인다. 우리는 하나하나를 저항하기보다 전체적인 부분을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결국 나중에는 의식마저도 저항없이 변화시킬수 있다고 결론 지을 수 있다.

현실에서 어떻게 무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답은 환경의 변화이다.

환경이라는 것은 도시 한바퀴를 돌며 씨앗을 뿌리고 물을 뿌리고 햇볕을 쬐는 일과 같다. 인간이 태어나 약 세살이 되기까지 자아가 형성된다고 한다. 그 세살까지의 환경이 나머지 여든의 삶을 만든다는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의 속담과 일맥상통한 것이다.
그러면 우리 나이가 지금 30,40이면 이미 늦어버린 걸까?

아니다.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위에서 말했듯 오염된 도시에 작은 선행 하나하나가 결국 전체를 바꿀수 있다고 예시를 들었다. 세살에 이미 우리는 환경이 좋지 않아 불행하게도 병든 도시를 갖게되었다 할지라도, 도시 전체에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햇볕을 쬐어 꽃을 피울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람은 환경에 굉장히 예민하다. 당장 회사에서 '나'에게 부동산 시장이 좋아서 부동산을 사라고 한다고하자, 심지어 집에 오면 부모님도 그리고 친한 친구도 그게 맞다고한다. 그러면 이 사람이 결국 부동산을 사게 될 학률이 얼마라고 생각하는가?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갖지 않으면 사람은 당연하게도 주위 환경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무의식 변화를 위한 환경조성 그 첫번째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에 가까운 사람의 책을 읽는다

내가 부자가 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회사에 가면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부자다. 이사람은 항상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집에 가면 억만장자의 부모님이 있다. 나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억만장자는 어떠한 판단을 하고 어떠한 인생을 살았는지 유추해 낼 수 있다. 내 친구 또한 세계적인 혁명가이다. 그 친구는 전화할 때 마다 어떻게 혁명적인 사고를 하게되었고 이것을 경제적 수입과 연결했는지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자 이사람이 이상향에 가까워 질 확률은 얼마나 될것인가? 나는 지금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당연한 이야기가 쉽게 와닿지 않는 사람을 위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자세히 이야기를 한 것이다.

다시한번 강조하자면, 책을 읽는 다는 것은 결국 내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환경을 바꾸는 이유는 환경을 바꾸는 것이 내 무의식을 바꾸기 때문이다.

내 무의식을 바꾸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 무의식은 직관적인 판단을 돕고 결국 의식에 피드백 되기 때문이다.

직관적 판단이 왜 중요한 것인가?

직관적 판단을 잘 하게되면 남들보다 적은 에너지를 소모하여 더 빠른 판단력을 하게되고 남은 에너지를 더 효율적이고 집중하는 일에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남은 에너지로 이성적 판단까지 유리해 질 수 있다.

왜 판단이 중요한가?

판단이라는 것은 '나'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판단에 따라 내 인생이 결정된다. 내 판단에 따라 내 미래가 내 환경이 바뀌기 때문이다. 결국 판단은 새로운 나의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내 환경을 만드는 것은 결국 책을 읽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내가 닮고자하는 사람의 책을 읽어도 되고 이야기를 들어도 되고 영상을 보아도 된다. 끊임없이 나를 이상적인 환경에 노출시켜라.
그것인 직관적 사고, 무의식 그 모든 것을 변화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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